모딜리아니는 살아생전에 자신의 성공을 보지못한 비운의 화가이다. 물론 생전에 인정받지 못하고 사후에야 인정받은 화가들은 많다. 그럼에도 모딜리아니의 삶이 더욱 비극적인 것은 그가 36살의 나이로 요절했다는 것이다. 그는 대중의 큰 인정을 받지 못했고 일생동안 단 한번의 전시회를 열었다. 말년에 그의 화풍이 점점 발전하면서 경제적으로 나아지는가 하더니 죽어버린 것이다.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보면 인물들이 길쭉길쭉하니 얼굴을 마치 오이같이 묘사해놨다. 요즘 몇몇 스마트폰으로 자기 얼굴을 찍으면 길쭉하게 나오는 현상이 있다고한다. 이를 '오이 현상'이라고 부르던데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딱 그 꼴인 것같다. 그의 이런 화풍은 그 어떤 화가들에게서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사후에도 그의 화풍은 독보적이었다. 그야말로 '독고다이' 화풍이었던 것이다. 길쭉한 얼굴, 길쭉한 코, 좁은 인중, 좁은 미간 그리고 몇몇 작품에는 눈동자마저 그려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화풍은 유행을 탄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화풍이 유행을 타고 그 유행을 따라 명성과 부를 얻게 된다. 음악 장르중에 힙합이 유행하기 위해서는 활발하게 활동하는 힙합 뮤지션이 있어야 할 것이다. 미술도 마찬가지로 유행을 타기 위해서는 같은 화풍을 가진 화가들이 어느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러나 모딜리아니의 화풍은 너무 독보적인 탓에 비슷한 화풍의 화가가 없었고 유행이 되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는 이탈리아 태생으로 다소 병약한 몸으로 태어났고 일생동안 병약했다. 미술은 14살부터 공부했다. 병약했던 그는 앓고있던 폐병이 악화되어 17살 되던 해에 잠시 요양을 해야했다. 이후 22살에 파리로 떠나 여러 화가들과 친교를 맺으며 작품활동을 한다. 그는 상당한 미남이었는데 화려한 외모에 미술 실력까지 더해져 꽤나 인기를 끌었다. 물론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25살에는 주로 조각을 했는데 조각을 할 때 나오는 분진이 그의 폐병을 다시 도지게 했다.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는 초상화와 누드화를 주로 그렸다. 그리고 33살에 처음이자 마지막 전시회를 열게 되는데 홍보를 위해 밖에 내어두었던 그의 누드화를 본 경찰관에 의해 소동이 일었고 얼마 뒤 전시회는 중단되었다. 이제 좀 유명해지나 싶던 그의 날개가 꺾여버렸다. 이후 가난과 병세가 악화되었고, 사랑했던 연인 잔 에뷔테른과도 헤어지게 된다. 가난과 고독, 그리고 점점 심해져가는 병세에 시달리던 그는 3년 뒤 36살의 나이로 세상을 등지고 만다. 이후 헤어졌던 모딜리아니의 연인은 그의 죽음을 듣고 자살한다. 모딜리아니는 그의 안타까운 일생만큼이나 안타까운 연애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서 하겠다.
'미술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벤스, 그림 공장에서 그림을 찍어낸다. (0) | 2020.07.12 |
---|---|
마네와 모네, 인상주의의 아버지에 대해 알아봅시다. (0) | 2020.07.11 |
칸딘스키, 기초디자인과 점, 선, 면에 대해 알아봅시다. (0) | 2020.07.10 |
밀레, 농촌과 농민에 대해 알아봅시다. (0) | 2020.07.10 |
클림트, 황금과 여성에 대해 알아봅시다. (0) | 2020.07.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