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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야기

마네와 모네, 인상주의의 아버지에 대해 알아봅시다.

by 모아보는 미술 2020. 7. 11.

마네와 모네는 형제같이 비슷한 이름만큼이나 형제같은 친한 사이로 지냈다. 실제로 서로를 화폭에 담기도 했고, 작품의 주제도 비슷하거나 같은 경우가 많았다. 마네는 가난했던 모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할 정도로 모네를 아꼈고, 모네는 마네를 따랐다. 그러면서 둘은 서로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며 성장했다. 마네는 빛을 잘 표현했다. 작품에서 검은색과 밝은 부분의 대비를 통해 밝은 느낌을 주었다. 그의 작품 중에 '올랭피아'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 그림을 보면 빛과 어둠이 도드라진다. 하지만 이 작품은 발표 당시에 큰 혹평을 받는다. 그 이유는 굉장히 외설적인 표현때문이었다. 당시의 나체화는 여신이나 천사들을 주제로 인체의 아름다움을 숭고하게 표현해왔는데, 마네의 그림은 달랐기때문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은 매춘부였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빛이 마치 당대의 미술계를 멸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현대에 와서야 그가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당시에는 그저 외설적인 작품을 쏟아내는 작가였다. 그럼에도 그가 인상주의의 선구자가 된 것은 모네를 비롯한 후배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모네 역시 인상주의의 아버지이다. 어떻게보면 마네보다 인상주의를 더 발전시켰고, 인상파의 '인상'이라는 단어는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에서 나왔으니 그럴만도 하다. 물론 처음에 인상파라는 말은 조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정돈되지 않은 붓터치와 색감, 흐릿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 주제부, 심지어 무엇을 그린건지도 잘 모를 모호함은 당시의 시각으로는 조롱거리에 불과했을 지 모른다. 당시 전통적인 기법은 화실 안에서 정적인 대상을 그렸다. 또한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같은 장소에 같은 구도와 같은 시간을 맞춰서 여러 번 갔어야했다. 모네는 달랐다. 그는 풍경이나 대상에서 느껴지는 찰나의 인상을 캐치하여 그것을 화폭에 담게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다소 정돈되지 않은 모습의 그림이 나온 것이다.

모네, '인상: 해돋이'

 우리가 눈으로 직접 보는 화면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를 보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내가 대상에서 인상깊게 느끼는 것은 더 또렷하고 과장되어 보일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만큼 흐리게 보인다. 수 많은 인파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 또렷하게 보이고 심지어 후광이 비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모네는 전통회화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낸다. 당시 그림에서 어두운 부분은 검은색으로 표현되는 것이 당연했는데, 모네는 어둠을 다양하게 표현해낸다. 그림자나 어둠의 영역을 무작정 어둡게만 표현하지 않고 다양한 밝기와 색상으로 표현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상주의 작품들을 선호한다. 그 이유는 카메라의 발전으로 회화가 대상을 무작정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회화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시각을 표현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눈은 카메라가 아니기에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각자마다 느끼는 색이 다르고, 밝기가 다르고, 심지어는 형태도 달라보인다. 회화는 이러한 다양하고 독특한 시각을 표현함으로써 '나의 느낌'을 전달하는 매개라고 생각한다.

모네, 베니스 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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