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를 흔히들 '빛의 마술사'라고 부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젊은 시절이야기고, 말년에는 '빚'에 허덕이며 쓸쓸한 삶을 마감한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조명이 무대 위를 비추고 등장인물들은 멋진 연기를 펼치고 있다. 조명의 빛이 다다르지 못한 부분은 과감히 날려버리고 밝은 부분을 강조한다. 그 때문에 연극같은 연출이 한결 두드러진다. 렘브란트는 네덜란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다. 어려서부터 남달랐던 그는 14세라는 어린 나이에 대학에 입학한다. 그야말로 천재였다. 하지만 미술 이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렘브란트는 대학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미술계로 뛰어든다. 렘브란트가 활동한 17세기는 네덜란드가 스페인과의 긴 전쟁끝에 실질적인 독립을 이루고 국력이 자라고 있는 시기였다. 네덜란드가 해양시대를 개척하고 점차 유럽의 신흥강자가 되더니 새로운 시장이 열리게 되었다. 사회적으로는 개신교의 위상이 높아지며 교회의 사치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에 따라 미술계의 큰 소비자였던 교회의 자리를 부유한 평민계층이 대체했다. 당연하게도 수요층이 바뀌면서 미술계의 화풍은 다양해져갔다.
램브란트는 20대부터 큰 관심을 받았는데 그의 작품은 잘 팔려나갔고, 그의 애호가들이 생겨났으며, 제자들이 생겼다. 이에 따라오는 막대한 돈으로 그가 한 일은 거장들의 작품을 사는 것이었다. 이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이유에서였는데 다른 화가들이 영감을 얻기 위해 여행을 다닌 것과는 조금 대조되는 대목이다. 그는 많은 작품중에서도 판화를 주로 구입했는데 판화가 명암의 대비가 뚜렷해 빛과 어둠을 연구하는데에 큰 도움이 되기때문이다. 렘브란트의 대표작으로는 '튈프 교수의 해부학강의'와 '바닝코크 대장의 민병대'가 있다. 당시 유행이던 집단초상화는 정적인 분위기로 그려졌는데 렘브란트는 달랐다. 그는 인물들을 역동적이고 생동감있게 표현했다.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을 화폭에 담아낸 듯 하다. '바닝코크 대장의 민병대'는 발표 당시부터 큰 관심을 모으며 렘브란트에게 큰 명성을 안겨주었다. 그와 함께 막대한 양의 그림 주문이 뒤따랐다. 일에 묻혀살던 그에게 갑자기 불행이 닥치는데 바로 아내의 죽음이었다. 아내의 죽음과 함께 그는 급속도로 무너져갔다. 방탕한 생활이 이어졌고 그림 주문도 점점 줄어들었다. 지금껏 모아왔던 거장들의 작품들도 처분해버리고 그의 재산은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이 때 렘브란트에게 가족은 아들 하나 남아있었는데 아들이 27살 되던해에 아들마저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홀로 남은 렘브란트 역시 생을 마감한다. 나는 렘브란트의 인생을 용두사미에 비유하고자 한다. 부유한 집안, 젊은 시절부터 얻은 부와 명예, 그러나 너무 빨리 모든 것을 얻었기 때문이었을까, 그의 말년은 쓸쓸하다못해 씁쓸하리만큼 어두웠다. 마치 빛과 어둠을 잘 표현해낸 그의 그림처럼 젊은 시절을 빛 속에서 지냈다면, 그의 말년은 그야말로 캄캄하게 표현된 어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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