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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야기

범인은 피카소입니다, 모나리자 도난사건에 대해 알아봅시다.

by 모아보는 미술 2020. 7. 5.

 

 모나리자 도난사건은 세기의 걸작이 사라진 것뿐만 아니라, 작품을 되찾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도 유럽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명화들이 그렇듯 모나리자 역시 많은 위작이 제작되었다. 아주 정교한 위작은 진품이 사라졌을 때 그 가치가 폭등한다. 그 이유는 진품이 원래 있어야 할 곳에서 사라진 순간, 위작이 진품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이용해 위작 전문가를 통해 위작이 6점 제작되었고 곧 사건이 벌어졌다. 1911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가 사라진 거대한 사건이 시작되고 있었다.

도난 사실은 이내 프랑스 전역으로 퍼졌고 루브르 폐쇄는 물론이고 국경까지 폐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면서 다름아닌 피카소가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 이유인 즉, 수사과정에서 '게리 피에레' 라는 인물 역시 용의선상에 올랐다. 그리고 그동안 피에레가 루브르의 작품들을 도난해 팔아왔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그 장물들중 일부를 피카소가 구입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피카소는 해당 작품들이 장물이라는 사실을 알지는 못했다. 수사를 통해 피카소는 혐의를 벗었지만, 피카소가 용의자로 오르면서 도난사건은 더욱 주목을 받게된다. 한편, 미리 만들어졌던 정교한 위작 6점은 거액에 팔려나갔다. 구매자들은 루브르에서 사라진 모나리자를 자신이 소유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년 뒤, 이탈리아 피렌체의 화상 '알프레도 게리' 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나는 지금 이탈리아의 자존심을 갖고 있소. 그 옛날 나폴레옹이 이탈리아로부터 약탈해갔던 그 자존심을.." 게리는 이를 무시하지 않고 편지를 보낸 사람을 찾았다. 그리고 편지를 보낸 이가 2년 전 루브르에서 사라진 진짜 모나리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모나리자의 행방이 밝혀지고 결국 절도범은 잠복해있던 경찰에게 체포되며 사건이 해결되었다.

절도범의 '빈센초 페루지아'라는 사내였다. 그는 루브르에서 훔친 모나리자를 루브르 근처 자신의 집에 숨겼다. 그리고 2년을 기다렸다. 그동안의 무슨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그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은 확실했다. 페루지아는 도난사건의 범인으로 이탈리아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재판장에서 그가 한 말에 주변이 술렁였다. "나는 프랑스가 약탈해간 우리의 국보를 다시 가져왔을 뿐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에 이탈리아 국민들은 열광했고, 여론 또한 그를 영웅으로 추켜세웠다. 재판결과 그는 7개월의 징역을 선고받고 그마저도 3개월만에 출소하게된다. 프랑스는 이같은 솜방망이 처벌에 불만이 있었지만 모나리자를 돌려받아야 하기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나리자는 프랑스로 곧바로 반환되지 못했는데, 이탈리아 정부는 즉각 반환 대신 한동안 고별 전시회를 개최하기로 한 것이다. 이탈리아 전역을 돌며 열린 모나리자 순회 전시회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고 프랑스에 반환된 후에도 모나리자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결국 도난 사건을 통해 모나리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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