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이야기

피카소, 그의 여인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모아보는 미술 2020. 7. 5. 03:37

파블로 피카소

 파블로 피카소는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다. 흔히들 우리 주변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피카소에 비유하는 일이 많다. 현대 미술 작가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는 그의 풀네임은 파블로 디에고 호세 프란시스코 데 파울로 후안 네포무세노 어쩌고저쩌고, 뒤에 이름이 더 있지만 너무 길어 이 정도로 생략하겠다. 그는 스페인 말라가 출생으로 여러 이름을 이어붙이는 말라가의 풍속덕분에 많은 재주를 얻으라는 축복의 의미에서 상당히 긴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많은 재주를 기원해 저렇게 긴 이름을 붙였지만 피카소는 안타깝게도 오직 미술에만 특출난 재능을 보였다. 그는 평범한 학교생활이 불가능 할 정도로 기초적인 학습능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미술계에서는 그의 학습능력을 굉장히 높이 샀다. 피카소는 굉장히 어린나이에 바르셀로나의 미술학교 라론하와 마드리드 왕립아카데미에 합격하였다. 너무 어린 나머지 입학시험을 치를 자격조차 얻지 못할 정도였다. 피카소의 아버지의 노력으로 겨우 시험을 치를 기회를 얻은 그는 심사위원들을 깜짝 놀라게하며 미술학교에 당당히 합격한다. 10대에는 이미 학교에서 전통적인 미술 수업을 모두 마쳐 학교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었다. 그는 고전주의 화풍에 회의를 느끼고 자신만의 화풍을 찾고자 했다. 피카소는 18세에 첫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19세에 프랑스와 스페인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피카소, '키스'

 대부분의 화가들이 살아생전에 가난한 삶을 살았던데에 비해 피카소는 꽤 젊은 나이에 가난에서 벗어났다. 다만 20대 초반에 잠시 가난했는데 이 때 어두운 푸른색을 주로 사용하였다. 이 때를 피카소의 '청색시대' 라고 부른다. 한편 25세에 프랑스에서 주목을 받은 그는 이듬해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려냈고 '입체주의' 라는 새로운 화풍을 개척해냈다. 입체주의는 피카소를 있게 한 결정적 사조인데, 한편으로는 피카소는 입체주의에 연연해 하지 않았다. 또한 피카소는 92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는데 대부분의 화가들이 요절한 것에 비하면 굉장히 장수한 셈이다. 그의 긴 수명은 자신의 화풍을 무수히 변화시킬 충분한 시간이 되었다. 그로 인해 여러 화풍의 회화, 조각, 도예, 시와 희곡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을 섭렵했다.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그는 장수를 누린 만큼 굉장히 많은 여인들을 만났다. 가난한 시기에 교제했던 페르낭드 올리비에, 그녀의 친구였던 에바, 유부녀였지만 피카소의 첫 아들을 낳은 올가, 피카소의 내연녀 마리 테레즈, 사진작가 도라 마르. 40세의 나이차이를 가진 프랑소와즈 질로, 마지막으로 피카소의 임종을 지킨 자클린 루크가 있다. 알려진 것만 해도 이정도인데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건 얼마나 될 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92년이란 긴 세월동안 많은 여성과 사랑을 나누며 많은 작품을 남긴 피카소는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준 한 명의 미술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